황제의 비만치료제 '곤약'
황제의 비만치료제 '곤약'
작성자 : 박태균등록일 : 2007-04-19 오전 10: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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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펀지처럼 물을 마구 빨아들이는 곤약이란 식품이 있다. 이 식품은 구약감자 가루(곤약만난이라고도 한다)를 물과 섞은 뒤 2시간가량 숙성시켜 만든다. 곤약=글루코만난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글루코만난(식이섬유의 일종)은 곤약의 주성분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곤약은 글루코만난 4%에 물 96%가 더해진 식품이다.

곤약은 씹히는 느낌이 물컹물컹하다. 곤약에 맛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아무 맛도 없다. 함께 조리하는 음식의 맛과 향을 흡수할 뿐이다. 이 식품은 예로부터 약재로 쓰였다. 과거 중국에선 황제의 비만치료제였다. 동의보감엔 생리통이 심한 여성이 곤약의 힘을 빌리면(뜨거운 곤약을 마른 수건으로 싸서 하복부.허리에 찜질) 혈액 순환이 원활해져 통증이 경감된다고 기록돼 있다. 또 충치가 악화돼 치아의 뿌리까지 아파 오면 따뜻한 곤약을 아픈 쪽 볼에 꾹 대고 있으라고 처방했다.

인제대 식품생명과학부 김정인 교수는 "요즘엔 주로 다이어트.변비 예방.혈관 보호.혈당 조절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어트에 유용한 것은 열량이 낮아서다. 100g(고체 상태의 곤약)을 먹어도 9㎉에 불과하다. 또 먹으면 소화관 내에서 수분을 빨아들여 금세 포만감을 느낀다. 비만한 성인 20명에게 구약감자 가루(대부분 글루코만난)를 하루 1g씩 8주간 먹였더니 체중이 평균 2㎏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사실 한 가지. 구약감자 가루의 열량은 1g당 333㎉이나 된다.

변비 예방에 좋은 것은 곤약이 대장에서 물을 흡수해 변의 볼륨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성분인 글루코만난이 변비치료제로 알려진 식이섬유의 일종이다. 글루코만난은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한다.

곤약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역시 글루코만난의 효능이다. 스웨덴에서 건강한 사람 63명에게 구약감자 가루를 하루 4g씩 4주간 제공한 결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1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곤약은 당뇨병 환자에게도 권할 만한 식품이다. 먹으면 혈당이 서서히 올라간다. 곤약과 다른 당질 음식을 함께 먹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음식은 위.장 등 소화관을 매우 느리게 이동할 것이다. 글루코만난의 점성이 식이섬유 중 가장 높아서다. 결국 당질이 소화관에서 천천히 흡수될 것이고, 이는 식후에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는 것을 막아준다. 캐나다에서 2형(성인병) 당뇨병 환자에게 8주간 글루코만난을 매일 0.7g씩 제공했는데 혈당 조절은 물론 혈압까지 떨어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 먹을 때 주의할 점은 영양소가 거의 없어 매끼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란 것이다.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이영은 교수는 "기름에 볶기보다는 조리거나 데쳐 먹는 것이 좋다"며 "곤약이 지방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기름에 볶으면 열량이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미국 등 서구인들은 곤약보다 구약감자 가루를 주로 먹는다. 대개 캡슐 형태로 만들어 식이보충제로 시판하고 있다. 하루 1~4g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
by 인생타짜 | 2007/04/20 00:09 | 트랙백(132) | 덧글(0)
경영귀재 잭 웰치도 “대단한 사람” 극찬 ‘인사분야의 수퍼스타’
  • 경영귀재 잭 웰치도 “대단한 사람” 극찬 ‘인사분야의 수퍼스타’
  • 윌리엄 코나티 GE 인사담당 수석 부사장
    “보스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 등 글로벌기업 인사원칙 7가지 밝혀
  • 신정선 산업부 기자 violet@chosun.com
    입력 : 2007.04.06 13:59 / 수정 : 2007.04.07 06:23
    •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운 ‘경영의 귀재’ 잭 웰치는 그를 가리켜 “대단한 사람”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현 CEO 제프리 이멜트도 “나의 첫 번째 친구”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4월9일자)에서 ‘인사(人事) 분야(HR)의 수퍼스타’라는 화려한 찬사를 바쳤다.

      윌리엄 코나티(William Conaty·61) GE 인사담당 수석 부사장에게 쏟아진 여러 수식어는 GE의 명성을 갈고 닦은 그의 능력과 업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뉴욕 빙엄턴 출신인 코나티는 브라이언트대를 졸업하던 1967년 GE에 입사했다. 40년간 몸담은 GE에서 13년을 인사부 최고 책임자로 일하며 전 세계 GE 직원 31만여명을 관리해왔다. 그는 일용직 직원부터 노조 임원, 고위급 간부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남다른 존경을 받고 있다. 웰치에서 이멜트로 이어지는 GE 사령탑 전환을 매끄럽게 마무리했으며, 상상력과 포용력을 강조하는 차세대 리더십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올여름 노조협상을 마무리한 후 정년 퇴임할 예정인 그가 글로벌 기업의 인사 원칙에 대한 7가지 조언을 공개했다. 

      ① 직원들 간의 차별화를 주저하지 말라

      직원들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야 조직의 활력이 살아나고 능력 위주의 문화가 정착된다. 순위를 매기고 업적에 따라 상벌(賞罰)을 내려야 한다. GE의 핵심 동력은 능력있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을 뚜렷이 구별하는 ‘차별화’에 있다. 동료들과 비교되고 있다는 긴장감은 업적 수행에 대한 동기부여로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② 끊임없이 ‘기준’을 높여라

      GE 임원들이 실패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배움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이 많아지고 책임은 커지는데, 사람의 그릇이 그에 맞게 커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GE의 임원훈련센터인 크로톤빌에 입소할 사람으로 지목됐다는 것은 승진재목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사의 광범위한 훈련 프로그램은 중간급 간부들에게 자극을 주고 신입사원을 선별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된다. 

      ③ 보스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

      인사 담당 임원들은 CEO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요소들에 집중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한다. CEO에 치우치게 되면 ‘직원들의 대변자’라는 인사 담당의 막강한 역할을 스스로 축소하는 것이다. HR 담당이 CEO가 가진 생각의 틀에 갇히면 사람들이 그를 불신하게 된다. 나는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이멜트와 거리를 두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공격할 때도 있었다. 

      ④ 교체하기 쉬운 사람이 되라

      위대한 리더는 후계 계획을 제대로 갖추고 실행한다. 반대로 불안전한 리더는 후계 문제에 겁을 낸다. “나만큼 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리더는 조직의 힘을 뺀다. 각 분야의 GE 리더들은 그가 통솔하는 팀의 능력에 의해 평가 받고, 그가 팀원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가르침을 전했느냐에 따라 보상받는다. 나는 내가 이끌고 도와준 사람이 내 후계자가 됐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⑤ 사람을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1988년 GE가 보르그 워너사(社)의 화학 사업을 인수했을 때, GE는 보르그 워너 측 판매팀이 GE만큼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의 결정권은 GE측 인사들에게 돌아갔고 기존의 보르그 워너 팀들은 소외됐다. 결국 GE는 판매팀 대부분을 잃었고, 사업도 실패했다. 인수할 기업의 절반 정도 인원은 함께 품어야 할 사람들이다. 심리적·금전적으로 그들이 한 팀이 됐다고 느낄 만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라. 

      ⑥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줄 줄도 알라

      GE는 한때 ‘죽음의 키스’로 여겨졌던 휴직을 과감히 허락했다. 인사 담당 고위 임원이던 샤론 댈리는 승진을 거부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겠다”고 고집한 적이 있다. GE는 그녀가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파트타임 일을 줬다. 현재 그녀는 GE의 에너지 비즈니스 부문의 최고위 간부로 성장했다. 

      ⑦ 단순함의 미덕을 깨달아야 한다

      혼란스러운 메시지와 수천 개의 목표를 내세워서는 수십만 명의 직원을 이끌 수 없다. 리더는 조직의 목표를 위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데 있어 일관되고 솔직해야 한다. 사업 환경이 어려워졌을 때에도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역경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역경에 굴복하느냐는 상황을 다루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by 인생타짜 | 2007/04/08 07:36 | 트랙백(96) | 덧글(0)
    [단독택지를 노려라] 재테크의 대상으로 단독택지 각광
  • [단독택지를 노려라] 재테크의 대상으로 단독택지 각광
  • 전원생활과 임대수입 두 가지 노릴 수 있어
  • 입력 : 2007.04.06 15:01 / 수정 : 2007.04.07 23:35
    •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전원주택 '헤르만하우스'의 내부 모습
    •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새로운 재테크 대상으로 택지개발지구 내의 단독택지가 떠오르고 있다. 단독택지란 땅을 매입한 곳에 직접 주택을 지어서 거주하는 단독주택을 짓거나 3층 이하의 건물을 지어서 임대가 가능한 다가구주택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1990년대에는 주로 양평과 여주와 같은 수도권 외곽 지역에 전원주택을 지었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근린시설이 갖춰진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택지개발지구 내의 단독택지는 전원주택의 한적함과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거주 공간이나 재테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동탄지구와 동백, 판교 등지의 신도시개발지역의 아파트 분양가를 살펴보면 평당 1300만~1600만원에 이르는 고가에 분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신도시개발지역 내의 단독택지는 평당 400만~500만원 선으로 동탄, 동백, 판교의 아파트 가격에 비하여 매우 싸다고 할 수 있다. 경희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 이성근 교수의 설명이다.

      “아파트에 투자를 하던 수요자들이 단독택지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판교 분양 이후 서울의 아파트 값이 30% 이상 올랐으니까요. 아파트 45평형은 7억원 이상인 데 비해 단독주택 70평형은 3억5000만원이면 투자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시세차익을 낼 수 있고 수익성이 있어서 재테크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단독택지는 주거 전용의 집만 지을 수 있는 단독주택지와 점포를 지을 수 있는 점포 겸용 주택지로 나뉜다. 용인의 죽전지구 같은 경우 단독주택지는 건폐율(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의 바닥 면적의 비율) 40% 이하,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延面積)의 비율)80% 이하에 3가구 이하의 건물과 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200% 이하에 6가구 이하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죽전지구의 단독택지에 1층에 30평형 정도의 2층짜리 건물, 건평 60평짜리 집을 짓는다고 하면 취득세 포함 6억5000만원 정도를 예상하면 되지만, 아파트 60평형짜리를 분양 받으려면 8억~10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점포 겸용 주택지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1층에 상가를 두어 임대를 하거나 직접 상가를 운영하고 상가 위로 주택이 위치한다. 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200% 이하로 점포를 제외한 4가구 이하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건축기준은 택지개발지구 별로 조금씩 다르나 대부분 같다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토지공사 화성동탄지구 구정용 주임은 “동탄신도시 분양 당시에 점포 겸용 주택지 19필지를 분양하는데 684명이 분양을 신청하여 3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올 3월 이후로 각각 795필지와 3288필지의 단독택지를 전국적으로 분양할 계획이다. 토지공사는 수도권의 경우 파주 교하지구 70필지, 양주고읍지구 180필지, 화성 향남지구 52필지 등을 분양할 계획이다. 토지공사 유경희 과장은 “수도권 단독주택지의 경우 이주자택지 보상 분으로 택지지구 내에 원래 살던 거주자에게 우선 공급합니다. 그 뒤 해당 시에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주가 1순위이고, 일반 실수요자들은 2순위로 밀려 있습니다. 일반 실수요자들은 이주자 택지 보상용지가 계약 후 1개월 뒤부터는 전매가 가능하므로 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 경기도 양평군의 단지형 전원주택.
    • 토지매각공고에 관한 정보와 분양에 관한 정보는 토지공사 토지청약시스템(buy. iklc.co.kr)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수의계약으로 나와 있는 대상 토지의 경우는 토지공사 사무실을 직접 찾아서 즉석에서 거래를 할 수 있다.

      재테크를 염두에 두고 택지개발지구 내의 단독택지를 분양 받을 때에는 건축허가에 관련된 사항과 건축법에 따른 부가적인 규제를 본인이 다 처리해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건폐율과 용적률 등을 따져보고 다가구주택을 지을 경우에는 옆집과의 거리, 주차장 면적에 관한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점포 겸용 택지에 투자할 경우에는 역세권 등 교통의 편의성을 고려하는 게 좋다.

    • 요즘 새로운 형태의 단독주택이 나오고 있는데 전원주택형 ‘타운하우스’가 그것이다. 새로운 주거 형태의 하나로 블록형 단독주택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에서는 있을 법한 사생활의 침해가 없다는 점에서 단독주택이라 할 수 있으나 정원과 담을 공유하고 있고 관리비를 다른 가구와 같이 납부하는 점에서 공동주택의 모습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타운하우스는 택지개발지구 내의 편의성을 가지고 전원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생활하므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의 장점을 겸한 주거 형태이다. 택지개발지구 내에서 타운하우스로 개발해 분양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용인의 동백지구와 죽전지구, 고양 행신지구에서 타운하우스가 분양될 예정이다.

  • by 인생타짜 | 2007/04/08 06:49 | 트랙백(83) | 덧글(0)
    ‘그림 속 에로티시즘- 파멸 부르는 위험한 쾌락 ‘불륜’
    “사랑인가, 허상인가? 그리스·로마신화 곳곳에 일탈 흔적”
    월간중앙

    ▶<비너스와 마르스를 놀라게 하는 불카누스>
    야코포 틴토레토
    1550~1555
    135×198㎝
    뮌헨 피나코텍미술관 소장


    아무리 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첫 번째가 사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지면서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가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로 마음을 묶어 놓았기 때문에 사랑은 정지돼 있다.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조차 없애게 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말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 결혼만큼은 파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혼을 파괴하는 순간 사회적 책임이 곧바로 자신의 등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인 공식적 사랑도 바람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불륜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불륜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기를 더 원하는 듯하다. 대개 불륜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처에 노출될 우려가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마음 한켠으로 사랑이라는 허울을 쓰고 앉아 가슴을 앓기보다 불륜이라는 가면을 쓰면 그래서 편해지는 것이다. 사랑이 깨지면 의사의 심리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상처가 깊지만, 불륜은 깨져도 반창고만 필요할 정도의 상처만 남는다고 단언하면 사랑과 불륜을 너무 도식적으로 구분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대개 젊은 날 수없이 사랑하면서 상처받고 그 상처로 인해 성숙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랑에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 치유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불륜을 기웃거린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의 유령>
    애리 셰퍼
    1855
    캔버스에 유채
    171×239㎝
    루브르박물관 소장


    불륜이 습관화하면 제자리에 돌아와 상처를 치유한 다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결혼은 충만감을 선사하지만,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소중한 부분을 잃어버렸을 것 같다는 상실감도 함께 부여한다고 한다. 그 상실감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결혼은 토지 등기부등본처럼 확실하게 도장을 찍었기에 상대방에게 무관심해지기 일쑤다. 심지어 사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결혼을 영위하려는 태도마저 생겨난다. 그래서 사는 재미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지 않고 사는 즐거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불륜이 그러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일탈의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조금만 비켜설 때 쾌락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닌가?

    일탈을 꿈꾸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다. 바람처럼 흐르는 사랑의 마음은 어느 시대나 같기 때문이다. 일탈이 주는 흥미와 서스펜스는 사는 재미를 더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불륜의 현장을 들키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불륜은 어느 누구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욕망이다. 호로메스의 <오디세이아>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비너스와 마르스가 불륜을 저지르다 비너스의 남편에게 현장을 들키는 이야기가 있다.

    신화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에게는 못생긴 남편 불카누스가 있다. 불카누스는 아버지 주피터 신의 장난으로 비너스와 결혼하게 된다. 바람둥이의 천성을 버리지 못한 비너스는 남편 불카누스를 속이고 유명한 바람둥이 마르스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신화에 표현된 에로틱한 꿈의 세계

    어머니 주노마저 아들의 모습을 싫어할 정도로 못생긴 불카누스는 비너스와 마르스의 정사를 알고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불카누스는 유독 질투심이 강했다. 태양으로부터 아내의 불륜 사실을 전해 들은 불카누스는 아내의 불륜 장면을 덮치기로 마음먹고 두 사람이 정사를 할 침대에 청동 그물을 설치한다.

    야코포 틴토레토(1519~1594)의 <비너스와 마르스를 놀라게 하는 불카누스>. 이 작품은 불카누스가 불륜의 현장을 찾아온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불카누스는 의혹의 눈초리로 비너스의 허리에 걸쳐 있는 침대 시트를 들춘다. 비너스는 남편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스스럼없이 시트를 들어올리고 있다. 비너스가 누워 있는 침대는 당시 베네치아 매춘부들이 사용하던 침대의 디자인으로, 비너스의 바람기를 상징한다.

    그런데 마르스는 갑옷을 입은 채 탁자 아래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 아닌가? 아직 불카누스에게 불륜의 현장을 들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너스 침대 밑에 있는 개가 마르스를 보고 짖고 있어 들키기 직전임을 암시한다. 화면 뒤쪽에 보이는 마르스의 방패에 침대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다시 한번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야코포 틴토레토는 색채와 빛에서 베네치아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불륜을 은폐하기 위한 비너스의 뻔뻔함과 폭로 직전의 불카누스의 긴장감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였다.

    헨드리크 드 클레르크(1570~1629)는 <불카누스의 함정에 빠진 마르스와 비너스>에서 불카누스의 함정에 빠져 마르스와 비너스가 다른 신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묘사해 눈길을 끈다.

    불카누스의 계략을 알지 못하는 연인들은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른 채 달콤한 사랑에 빠져 막 정사를 하려고 한다. 그 순간 청동 그물이 두 사람을 덮쳐 꼼짝 못하게 한다. 이때 불카누스는 올림푸스에 있는 신들을 불러 모아 두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불카누스의 함정에 빠진 마르스와 비너스>
    헨드리크 드 클레르크
    런던 휘트필드갤러리 소장

    헨드리크 드 클레르크는 신화의 내용에 충실하게 표현한 화가다. 당시 전 유럽의 미술가들은 후원자를 위해 에로틱한 꿈의 세계를 창출했고, 클레르크도 신화의 내용을 빌려 에로틱한 세계를 묘사했다.

    신들도 사랑의 바람에는 속수무책인 것처럼 바람결에 불어오는 사람에 사람들의 마음은 저절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항상 사랑은 자신의 존재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을 타고 흐른다. 멀리 있는 존재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거리는 좁다. 자주 보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이지, 멀리 있는 사람에게 사랑이 찾아가지는 않는다.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와 남자가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 흔하지 않은 기회 중 하나가 상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불운을 겪는 일이다. 불운인지 알지만 사랑에 빠진 영혼은 미친 듯 질주하기 시작한다. 불운에 노출되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세상이 침묵하기만 바란다. 불운한 여인들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기도는 항상 침묵하고 파도는 요란하게 밀려온다.

    상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다

    상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 가장 대표적 이야기가 500년께 영국의 위대한 아더 왕의 아내 귀네비에와 그의 기사 랜슬럿이다. 아더 왕의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 랜슬럿은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가 궁정에 나타나면 여인들은 사랑에 몸살을 앓았지만, 그는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이 주지 않았다. 아더 왕과 왕비 귀네비에도 외모뿐만 아니라 탁월한 전공을 자랑하는 그를 신뢰한다.

    기사로서 완벽한 랜슬럿은 아름다운 왕비의 기사가 된다.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던 두 사람은 관심을 넘어 애정을 키우게 되었고, 남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결국 아더 왕에게 들키고, 랜슬럿은 부정한 여인으로 화형에 처해지기 직전의 귀네비에를 구해낸다. 왕에 대한 충성심보다 사랑에 자신을 몰아넣으면서 두 사람은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두 사람의 불륜을 넘어선 지독한 사랑은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게 되었고,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침대에 있는 랜슬럿과 귀네비에>. 이 작품은 아더 왕의 이야기를 다룬 <랜슬럿 성배>라는 책에 나오는 삽화 중 하나다. 14세기 프랑스 귀족들에게 사랑받았던 소설이 <랜슬럿 성배> 중에 나오는 이야기다. 5부작 소설에 삽화를 그려 넣음으로써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볼 거리를 제공했다. 이 삽화는 랜슬럿과 귀네비에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
    외젠 들라크루아
    1825~1826
    32×25㎝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싸미술관 소장

    화면 왼쪽 문이 열려 있는 것은 귀네비에가 사랑을 허락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검은 색으로 표현한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상징한다. 두 사람은 침대 시트에 몸이 감겨 있지만, 방금 사랑을 하고 난 듯 사랑의 황홀함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정사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 삽화는 두 사람의 사랑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상사의 아내를 사랑하는 일처럼 자신의 운명을 주사위처럼 던져놓는 일도 없다. 어둠의 파도가 조용히 물러나 주기만 바라지만 사랑만큼은 속이지 못한다. 사랑할 때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태양은 떠오르게 마련이다. 피하고 싶어도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면 연인들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된다.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부닥쳤을 때 불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르군도 공작에게 자기 정부의 나신을 보여주는 오를레앙 공작> 작품에서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그런 위기의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이 작품은 치명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불륜의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벌거벗은 상황에서 위기가 닥치면 여자들은 제일 먼저 얼굴을 가린다. 벌거벗은 육체만으로는 누구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얼굴만 가리면 자신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달콤한 즐거움을 포기할 줄 모르는 오를레앙 공작은 주군의 아내를 유혹한다. 공작 부인과 정사를 나누던 중 부인의 남편 부르군도 공작의 기습적인 방문을 받는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를레앙 공작은 직접 부닥치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 작품에서 정사를 벌이던 오를레앙 공작은 여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오를레앙 공작은 부르군도 공작을 자신의 침실로 안내하고는 침대 시트를 높게 들어올려 정부의 벌거벗은 육체만 노출하고 얼굴은 가려버린다. 여인은 침대 시트 속에서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두 팔을 모으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차라리 사랑하지 말 것을…

    하반신을 그대로 노출한 채 누워 있는 여인을 보고 부르군도 공작은 아내인 것 같다고 의심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느낌만으로 오를레앙 공작에게 이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아내의 벌거벗은 몸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마침내 그는 “저 여인은 내 아내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낭만파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간부의 지혜를 표현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 부르군도 공작의 시선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부르군도 공작은 자신의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지만 하반신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 매력을 느낀다. 그러고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남자로서의 호기심을 먼저 드러낸다. 침대 시트를 걷어올려 정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오를레앙 공작의 행위는 노출과 은폐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위기 상황을 넘기고 있다.

    ▶<침대에 있는 랜슬럿과 귀네비에>
    <랜슬럿 성배> 삽화
    1320년경
    런던 브리티시라이브러리 소장

    출구 없는 상황에 몰렸을 때도 살아남는 자가 있지만, 사랑은 그리 만만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제도권의 보호를 받으면 좋겠지만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할 때 현실은 잔인하다. 사랑은 소리없이 다가와 운명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

    부질없는 사랑에 매달린 불행한 연인들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인 줄 뻔히 알지만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파국으로 치달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배반할 수 없어 천륜까지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천륜까지 저버린 비극적 사랑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단테가 <신곡> 지옥 편에 쓰면서 유명해졌다.

    이탈리아 라벤다의 군주 말라테스타 가문과 라미니의 영주 다 폴렌타 가문은 상권에 대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녀들을 정략결혼시키기로 합의한다. 말라테스타 가문에서는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가문의 상속자이자 결혼할 당사자인 조반니가 절름발이에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잘생긴 조반니의 동생 파올로를 내세워 다 폴렌타 가문의 딸 프란체스카와 맞선을 보게 한다.

    정략결혼에 반대하던 프란체스카는 잘생긴 파올로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허락한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끌렸다. 프란체스카는 첫눈에 반한 남자 파올로가 남편인 줄 알고 결혼하지만 첫날밤에 남편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행복하다고 생각한 결혼은 순식간에 불행을 잉태하고 말았다.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두 사람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고, 결국 그들의 운명은 실타래처럼 얽혀 버렸다. 그들은 성격이 난폭한 조반니의 눈을 피해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고, 두 사람의 위험한 사랑은 그렇게 파멸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마침내 그들의 사랑은 발각되고 만다. 조반니의 염탐꾼이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남편은 질투에 눈이 멀어 두 사람의 목을 칼로 베어 버린다.

    저승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천륜까지 저버린 불행한 연인들은 중세의 법에 따라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신곡>은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던 중 두 연인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리 셰퍼(1795~1858)의 작품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의 유령>은 연인들이 저승에서도 사랑을 잊지 못해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표현했다. 지옥을 찾은 단테 앞에 두 사람은 홀연히 나타나 결코 헤어질 수 없었음을 알려준다.

    단테의 <신곡>을 충실하게 표현한 셰퍼의 이 작품은 비극적인 그들의 사랑이 어떤 경우에도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묘사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다른 작품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 결국 셰퍼는 이 작품의 아류만 그린 불행한 화가가 된다.

    by 인생타짜 | 2007/04/01 10:21 | 트랙백(168) | 덧글(1)
    [Family리빙] 20평대 아파트 30평대처럼 쓰려면 [중앙일보]
    Family리빙] 20평대 아파트 30평대처럼 쓰려면 [중앙일보]
    가구 놓되 한쪽 벽면 비우고
    벽지 밝게, 바닥재는 중간톤
    관련링크
    신혼부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20평형대 아파트. 처음에는 궁전 같기만 하던 집이 결혼 후 짐이 하나 둘 늘면서 점점 비좁게 느껴지는 경험, 해봤을 터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간을 채우려면 꼬박 3년은 살아야 하는 집인데, 신혼 초부터 '좁은 집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곤란하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인테리어와 가구 모두 집에 처음 들어갈 때 신중히 선택해야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테리어 자재 브랜드 Z:IN 송현희 디자이너의 조언으로 '작은 집 넓게 쓰는 법'을 알아봤다.

    #베란다는 확장, 침실과 거실을 넓게=20평형대 아파트는 대개 안방 1개, 작은 방 2개, 주방 겸 식당, 거실과 욕실로 이뤄진다. 이 중 침실과 거실을 최대한 넓게 쓰고 나머지 방 2개를 서재나 드레스 룸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포인트다. 옷장.책장.책상.컴퓨터 등 침실과 거실에 놓여야 할 가구를 방 2개에 모두 옮겨 놓는다. 20평형대 아파트는 베란다를 확장하지 않으면 널찍해 보이기 힘들다. 확장할 경우 3~5평은 더 생긴다. 창에는 커튼 대신 버티컬을 달도록 한다.

    #벽지는 밝은 색, 바닥재는 중간톤=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좋다고 좁은 집에 어두운 색 벽지를 바르면 더 갑갑해 보인다. 펄이 들어간 흰색이나 아이보리색 벽지가 좋다. 단조로워 싫다면 이러한 색상에 줄무늬나 체크무늬 등 패턴이 들어간 벽지를 고르면 된다. 대신 바닥재 색상이 너무 밝으면 가구와 따로 놀아 집이 더 좁아 보일 수 있으니 중간톤 정도를 택한다. 무늬가 없거나 텍스처 패턴보다는 원목무늬 PVC륨이나 강화마루.온돌마루를 권한다. 방마다 같은 바닥재를 써 같은 방향으로 깔도록 한다.

    #대형 가구는 피하자=가구를 고를 때 세 가지를 명심하자. 디자인은 단순하게, 색상은 밝게, 높이는 낮게. 거실에 키 큰 장식장은 피한다. TV를 올려놓는 낮은 장이면 충분하다(사진 (1)). 디자인도 중후한 클래식풍보다 단순한 모던풍으로. 침대도 마찬가지다. 높이는 최대한 낮추고 거추장스러운 침대 헤드는 떼어 버린다. 소파 대신 커다란 쿠션과 방석을 쓰는 집도 늘고 있다. 소파를 꼭 두고 싶다면 밝은 색상으로 고른다. 거실.침실에 가구를 놓을 때는 반드시 한쪽 벽면을 완전히 비워야 공간이 넓어 보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깔끔한 수납이 관건=20평형대 아파트라고 해도 실제 주거 공간은 15~18평가량. 따라서 최대한 수납 공간을 확보해 살림살이를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확장한 베란다에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붙박이형 컴퓨터장(사진 (2))을 짜 넣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사용하지 않을 때 문을 닫으면 컴퓨터와 관련된 소품들이 말끔히 정리된다. 옷장 윗부분, 세탁기 윗부분, 문 뒷면, 코너 등도 선반이나 붙박이장을 설치할 좋은 공간이다. 침대 옆에 칸막이를 세우고 칸막이 뒷면에 옷을 걸 수 있는 고리를 단 뒤 작은 서랍장을 놔두면 평소 입고 벗은 옷을 깔끔히 정리할 수 있다.

    기선민 기자
    by 인생타짜 | 2007/03/26 00:36 | 트랙백(124) | 덧글(0)
    실리콘밸리 닷컴은 지고 와트컴에 빠지다.
  • ‘와트컴’에 푹 빠진 실리콘밸리
  • 와트컴… <대체에너지를 닷컴에 빗댄 신조어>
    풍력·태양열 發電, 에탄올·수소車 개발 붐
    “닷컴거품 꺼진 이후 새로운 돌파구 찾았다”
  • 뉴욕=김기훈특파원 khkim@chosun.com
    입력 : 2007.03.15 00:14
    • IT(정보통신) 산실인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에너지산업 투자붐이 불면서 실리콘밸리의 닷컴 신화가 와트컴(Wattcom) 신화로 부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4일 보도했다. 2001년 IT버블(거품)이 붕괴한 이후 많은 기술 전문가들이 풍력 발전, 태양열 발전, 에탄올 생산, 수소전지차 개발 등 대체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와트는 전력의 단위다.

    •  

      LA의 에탄올 개발업체인 알트라의 래리 그로스(Gross) 사장은 1991년에 교육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지식 어드벤처’ 회사를 창립했을 당시 2000만 달러의 투자자금을 유치했다. 그러나 이번에 알트라에는 10배가 넘는 2억4500만 달러의 자금이 몰렸다. 최근 사람을 뽑기 위해 이력서를 받아보니 7년 전 IT붐 때처럼 학력 좋고 경험 많고,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로스는 “기회가 많은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 투자자와 고급인력을 에너지 분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IT붐 시대의 유명한 벤처기업 투자자이던 그의 형 빌 그로스도 태양열 집열판을 만드는 ‘에너지 이노베이션’ 회장으로 변신했다.

      실리콘밸리의 IT전문가들은 “IT업체의 노하우를 쉽게 에너지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실리콘은 햇빛을 전기로 전환시키는 태양열 집열판에 사용된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이용되던 생명공학 기술은 청정연료인 에탄올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활용된다.

    • ▲저가(低價)의 태양전지판을 생산하는 에너지 이노베이션(Energy Innovation)사(社)의 앤드루 비브 사장이 자신의 회사가 만든 태양전지판들 사이에 서 있다. /NYT
    •  

      지난해 벤처캐피탈 회사들이 실리콘밸리의 에너지 저장·생산·효율향상과 관련된 기업들에 투자한 규모는 5억1600만 달러. 2005년 1억4100만 달러에 비해 4배나 늘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전체 투자규모(110억 달러)에 비하면 아직 적은 규모이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사업을 다루는 변호사, 회계사, 헤드헌터, 홍보업자 등이 생겨나면서 실리콘밸리에 에너지사업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 외에 지구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에너지 산업 종사자가 늘어나는 중요 이유 중 하나.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Gore) 전 부통령은 실리콘밸리의 우상이 됐다.

      에너지회사 사장인 앤드루 비브(Beebe)는 “에너지 시장 규모는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시장을 합친 규모”라며 “실리콘밸리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와트붐은 과거 닷컴버블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기청정장치 개발업체인 클리모스의 댄 웨일리(Whaley) 사장은 “환경기업을 시작하는 일은 온라인 법률회사를 차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전문적인 과학지식과 고객의 신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by 인생타짜 | 2007/03/15 11:06 | 트랙백(121) | 덧글(0)
    비운에 굴하지 않은 야구천재
    비운에 굴하지 않은 야구천재

    [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
     
    ▲ 현재 SBS 해설위원으로 활약중인 박노준
    ⓒ2007 sbs
    개인적으로, 박노준이 해설하는 야구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그것 때문에 채널을 돌린다든가 하는 것까지야 아니지만, 그의 목소리는 분명 경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해설 내용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음색이나 억양이 거슬려서도 아니다. 그저, 그것이 박노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매끈하고 나긋나긋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마음 속 흑백필름으로 간직된 어느 신비한 영웅의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바로 이십 수년 전, 고등학생 시절의 그, 박노준 말이다.

    '독일병정'. 선린상고 시절, 박노준의 별명이었다. 날렵한 얼굴선에 강인하게 각진 콧날, 그리고 깊숙이 눌러쓴 헬멧 챙이 콧등까지 길게 드리운 그늘 밑에서 날카롭게 빛나던 두 눈으로 마운드를 노려보다가, 상대 투수가 선동열이든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 시원스럽게 방망이를 휘둘러 훌쩍 오른쪽 담장 너머로 결승홈런을 날려놓고도 미소조차 머금지 않던 비장함.

    그리고 바뀐 회에 상대팀이 추격을 시작하면 멀찍이 외야로부터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운드로 달려 나와 연속삼진으로 기를 꺾어놓고는, 다시 하이파이브 한 번 없이 덕아웃으로 달려 들어가던 그 풋풋함.

    지금은 해설자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박노준은 야구선수였다. 그것도 그냥 야구선수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야구선수였으며, 또한 그저 특별한 야구선수였던 것이 아니라 한 세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시작한 이래, 그는 항상 최고였다. 투수로서, 타자로서, 다시 야수로서, 주자로서 '얄밉도록 잘 한다'는 말의 뜻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 그였다. 그는 각 연령별 국가대표명단의 붙박이였고, 리틀야구 시절 그 때만 해도 넘어설 수 없는 장벽으로 여기던 대만을 상대로 국제경기 첫 승리를 이끌어냈던 것을 시작으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에 이르기까지 한국야구가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과의 곳곳에 이름을 남겨놓았다.

    고교야구의 전설

     
    ▲ 1981년 봉황기 결승 1회말에 홈슬라이딩 도중 발목부상을 입고 있는 장면
    ⓒ2007 출처 : 한국야구위원회,대한야구협회,[한국야구사]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고교야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고교야구경기가 벌어지는 동대문야구장에는 날마다 학생과 동문, 그리고 그 학교가 있는 지방 출신들이 간만에 모여 정겨운 사투리를 섞으며 작은 축제판을 벌이곤 했다.

    야구와 함께 양대 인기종목으로 꼽히는 축구에 대한 관심이 그때 역시 국가대표팀 경기에만 쏠려있었던 것과 달리, 고교팀을 중심으로 지역간 대결구도로 벌어지던 야구가 한 해 먼저 프로화 되고, 또 한참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박노준은 선린상고에 진학했던 1979년, 또 하나의 초고교급 투수 3학년생 윤학길이 이끄는 부산상고를 상대로 결승전 15-1 대승을 이끌어내며 1학년생으로서 MVP에 뽑히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2학년 때는 청룡기황금사자기 2연패를 이끌어내며 최우수선수와 우수투수상을 휩쓸었다.

    특히 1980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은 야구천재 박노준이 올라선 정점이었다. 그 경기에서 맞선 팀은 광주일고였고, 그 팀의 기둥투수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공의 소유자 선동열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박노준은 그 한 수 위였다.

    선동열이 이십 년이 넘도록 잊지 못한다는 그 날, 선동열 상대 4타수 3안타, 3타점. 그리고 결승 투런 홈런. 그뿐인가, 자신이 만든 결승점을 지키기 위해 마무리로 등판, 4.2이닝동안 1점만 내주고 삼진 8개를 뺏으며 박노준은 온전히 혼자 힘으로 우승을 만들어냈다. 앞선 청룡기에서 이미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상 역시 팀 선배 유지홍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1981년, 박노준은 역시 이미 2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차지한 초등학생시절부터의 동반자 김건우와 함께 3학년이 되었다. 거칠 것 없이 달려온, 그리고 여느 고교야구 스타들이 세 해 동안에도 다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미 첫 두 해 동안 모두 이루어버린 박노준이 그 해에 보여줄 활약에 팬들은 연초부터 들뜨고 있었다.

    그것은 야구전문가로부터 동대문운동장 스탠드에서 소주병 한 손에 쥐고 웃통 벗어젖힌 채 '노준이 최고다'를 외치던 아저씨들을 거쳐, 하이틴 잡지 설문조사에서 전영록을 밀어내고 박노준이라는 이름을 1위에 올려놓았던 여고생에 이르기까지, 일치된 전망이고 기대였다.

    그러나 전국 야구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으며 나섰던 그 해 봉황기 결승전. 1회말에 박노준은 승기를 굳히는 석 점째를 만들기 위해 홈으로 파고들었고, 전날 내린 비로 축축해져있던 그라운드는 그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순간 그의 발목이 뒤로 꺾였고, 그의 몸은 홈플레이트에 채 닿지 못한 채 뒹굴었다. 복사뼈 두 개와 3각인대가 파열되는 치명적인 부상.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기어서 홈플레이트를 찍고 나서야 덕아웃으로 실려 들어갔고, 그 안에서 다시 경기에 나서겠다며 한참을 버틴 끝에야 병원으로 옮겨졌다.

    석 점을 선취했던 선린상고는 박노준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허탈감에 실책을 연발하며 천적 경북고에 여섯 점을 헌납해 결국 4-6으로 무너졌고, 결승전 1회말에 실려나간 박노준에게는 '감투상'이 주어졌다.

    그 날 저녁 6시부터 공중파 TV로 전국에 생중계되었던 박노준의 홈슬라이딩은 다시 시간마다 뉴스에서 되풀이되었고, 중계차는 한강병원으로 출동해 박노준의 부상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박노준이 입원한 209호 병실에는 봉황기를 차지한 경북고 선수단과 끝내 눈물겨운 석 점을 지켜내지 못한 선린상고 동료들을 시작으로 길고 긴 병문안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시절, 등굣길과 하굣길에 행운의 종이학을 접어들고 병원 문앞을 서성이던 여고생들이 지금은, 꽤나 자식들 잔소리에도 이력이 붙은 사십대 주부들이 되어 있으리라.

    그 날 이후, 박노준은 비운의 스타, 혹은 비운의 천재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그 부상이 치명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선수생명을 끊어놓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진 박노준의 후반부 선수생활을 상징한 것이 그 날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비운의 스타, 비운의 야구인생

     
    ▲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의 박노준
    ⓒ2007 쌍방울 레이더스 팬북
    고려대로 진학한 박노준은 호적상 나이는 한 살이 적고 학번은 하나 높은, 그러나 실제로는 동갑내기였던 선동열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 그러나 자잘한 부상 때문에 쉬는 날이 더 많았던 선동열의 몫까지 떠안느라 해마다 100이닝 가까이 공을 던져야 했고, 투수 등판에서 빠지는 날이면 외야수로 나서 방망이를 휘둘러야 했다. 그리고 대학 경기가 없을 때는 빠짐없이 국가대표로 불려나가 다시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투수와 타자의 겸업. 일찌감치 한 쪽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던 재능과 당장 한 경기의 승리가 절실했던 대학팀의 욕심. 그것이 서서히 야구선수 박노준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1986년, 프로야구 신인시장에 나선 박노준은 여전히 '관중 삼천 명을 몰고 다니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서울팀 청룡과의 신경전 끝에 박노준 지명권을 손에 넣은 OB 베어스는 '이미 어깨가 망가져 투수로는 쓸 수 없다'는 명분으로 몸값을 깎기 시작했고, 결국 '역대 타자 최고액'이라는 5천만 원으로 낙찰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장 스프링캠프에서 그에게 떨어진 것은 '투타겸업'이라는 조치였고, 내심 투수에 미련이 있었던 박노준 역시 냉큼 지시를 받아들이고 만다. 그 때가 고교시절 보여주었던 재능을 프로무대로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기회를 마지막으로 날린 순간일지도 모른다.

    5승 7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3.25. 박노준이 프로무대에서 첫 해에 거둔 성적이었다. 어쩌면 신인 치고 무난한 것일 수도 있는, 그러나 '박노준'의 것으로서는 절망적인 성적이었다. 더구나 항상 그의 뒤에서 '2인자'로 불렸던 김건우와 성준이 각각 18승과 15승을 기록한 것에 비교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성적이었다.

    박노준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여전했던 밖으로부터의 기대와 안으로부터의 욕심, 그리고 반드시 스스로 진가를 증명하겠다는 집념은 투타겸업이라는, 무지했던 선수관리 속에서 끊임없이 역효과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고스란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치명적인 병원 진료일지에 기록되었다.

    87년 어깨부상, 88년 손등 뼈 골절, 89년 손가락 골절, 그리고 두 해 쉬고 92년 왼 무릎 인대 부상, 93년 갈비뼈 골절, 94년 허벅지 근육 파열, 다시 한 해 건너 96년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선천적으로 몸이 딱딱한 편이었던 그가 절대 그대로 사라질 수는 없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뛰고 구르고 몸을 날린 결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1994년은 그런 지루한 부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거듭한 도전 끝에,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서 '역시 박노준'이라는 찬사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던 해였다. 베어스에서 타이거즈를 거쳐 레이더스로 내쳐졌던 그는, 그 해 3할대 타율에 43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그 활약은 생애 첫 골든글러브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해 다시 근육 파열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두 해 뒤 무릎인대를 다친 뒤에는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겨운 지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따금 대타로 나와 홈런을 날리고도 절룩거리며 힘겹게 그라운드를 도는 그를 보며, 옛 팬들은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는 물기어린 박수를 보냈다. 재도 남지 않게 완전히 타버린 한 야구선수의 뒷모습이 주는 감동이었다.

    '오빠부대'라는 문화현상을 창조했던 정점의 사나이. 그가 걸어왔던 열 두 해의 거칠고 험했던 프로생활. 끊임없이 부러지고 끊어지며 절망을 재촉했던 운명 앞에서도, 그리고 오히려 짐이 되어 자신을 비웃는 화려한 과거 앞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완주해주었던 근성의 사나이. 내가 기억하는 박노준이 여기까지다.

    그 뒤 9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박노준은 지도자로서 재평가받겠다는 각오로 마이너리그에서 지도자수업을 받고 돌아왔다. 그러나 사라진 팀 레이더스에서 은퇴한 그가 마땅한 코치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 때 그에게 열린 새로운 길이 해설가였고, 그는 선수시절의 아쉬움과 지도자로서의 꿈을 담은 기술적 설명 중심으로 야구해설에 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해설이 거북하다. 내 마음 속의 비장한 영웅 '독일병정'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매번 낯설다.

    그러나 나는 그의 해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우리 야구사에서도 흔치 않았을 아찔한 성공과 깊은 좌절, 그리고 그것과 포기하지 않고 맞서왔던 이십여 년 야구인생의 내공이 언젠가 지도자로서 성공하고 인정받는데 쓰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은식 기자
    by 인생타짜 | 2007/03/09 12:24 | 트랙백(128) | 덧글(0)
    그래픽카드의 부가기능 제대로 활용하기-2004.04
    이제까지 출시된 그래픽 카드들은 D-SUB 단자만 달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DVI 단자나 TV 출력, VIVO 기능을 가진 그래픽 카드는 고급형으로 분류되어 가격도 비싸고 사용할 수 있는 주변기기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래픽 카드의 기술이 발달하여 고급형으로 인식됐던 DVI 단자와 TV 출력, VIVO 기능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0∼40만원대였던 고급형 그래픽 카드의 가격이 10만원대로 대폭 낮춰진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그래픽 카드들은 DVI 단자와 TV 출력을 동시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VIVO는 DVI 단자와 TV 출력을 가진 그래픽 카드보다 약간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Step 1 모니터 화면을 더 넓게~ 듀얼 모니터를 활용법

    그래픽 카드에 장착된 DVI 단자를 사용하면 모니터를 한 대 더 연결해 멀티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꾸밀 수 있다. 멀티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면 윈도에서 더 많은 작업 창을 실행시킬 수 있어 편리하다.

    ① DVI 단자를 이용해 멀티 디스플레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② 그래픽 카드의 DVI 단자와 D-SUB 단자를 각각 2대의 모니터에 연결한다.


    ③ 윈도 바탕 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르고 '등록 정보'를 클릭한다.


    ④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가 실행되면 '설정' 탭을 클릭한다.


    ⑤ 화면을 살펴보면 모니터 1번과 2번이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번 모니터를 클릭하고 아래쪽의 '내 Windows 바탕 화면을 이 모니터에 맞게 확장'을 클릭한다.


    ⑥ 이제 모니터 2대를 1대처럼 사용할 수 있다. 바탕 화면이 늘어났기 때문에 많은 양의 작업도 시원한 화면으로 볼 수 있다.


    ⑦ 연결된 모니터는 각각의 해상도와 주파수를 다르게 설정해 줄 수 있다. 이 부분도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에서 설정할 수 있다.



    Handy Tip DVI를 지원하지 않는 모니터인 경우


    DVI 단자는 TFT-LCD 모니터 등의 디지털 장비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모양이 다른, 기존 모니터를 연결하던 D-SUB 단자와는 서로 연결할 수 없다. 하지만 DVD 단자를 D-SUB 단자로 만들어주는 젠더를 사용하면 기존에 사용하던 D-SUB용 모니터를 연결해 멀티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꾸밀 수 있다.
    젠더는 기본적으로 제품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포함되지 않았다면 용산 등의 전자상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은 보통 9,000원 정도다.

    Step 2 TV 출력으로 동영상도 크게 보자

    DVI 단자와 함께 설치된 TV 출력 단자를 사용하면 PC 화면을 TV로 볼 수 있다. TV는 화면이 크고 PC 모니터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동영상을 볼 때 유리하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홈 시어터 PC도 그래픽 카드의 TV 출력 기능을 활용한 제품이다.


    ① TV 출력은 그래픽 카드 칩셋에 내장된 경우가 많다.


    ② 그래픽 카드의 TV 출력 단자를 TV와 연결한다. 보통 S-VIDEO 단자나 콤퍼짓 단자가 사용된다.


    ③ 윈도 바탕 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르고 '등록 정보'를 클릭한다.


    ④ 등록 정보에서 'TV' 버튼을 눌러 TV 화면을 활성화시킨다.


    ⑤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가 실행되면 '설정' 탭을 클릭하고 '고급' 버튼을 누른다.


    ⑥ 'TV' 항목에서 TV를 첫 번째 디스플레이로 설정하는 버튼을 누르면 PC 화면을 TV에서도 볼 있다.


    ⑦ TV 화면으로 출력하면 모니터 화면이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모니터 화면 제어기'를 통해 모니터 화면을 맞추면 된다.



    Handy Tip 다양한 TV 출력 장치


    ▲ PC 화면을 TV로 변환시켜 주는 TV 엔코더


    사용하고 있는 그래픽 카드에 TV 출력 기능이 없다면 TV 엔코더를 이용해서 TV 출력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TV 엔코더는 PC 모니터 신호를 TV 출력으로 변환시켜 주는 장치로 PC 확장 슬롯에 설치하는 내장형과 PC 외부에 설치하는 외장형이 있다. 어느 제품을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가급적 확장성이 뛰어나고 높은 해상도를 지원하는 제품이 좋다. 가격도 7∼16만원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확인한 후 구입하면 된다.
    Step 3 VIVO로 외부 영상 입력하기

    VIVO에는 TV 출력뿐 아니라 외부 영상을 PC로 입력시킬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즉, 외부의 TV 영상이나 DVD, 게임기 등 다양한 영상 장치를 연결해 PC 모니터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입력된 영상을 동영상 파일로 만들어 녹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멀티미디어 활용이 가능하다.

    ① VIVO는 다양한 입출력 케이블도 함께 제공한다.


    ② 외부 영상을 입력하려면 그래픽 카드의 TV 입력 단자를 DVD나 게임기 등에 연결한다. S-VIDEO 단자나 콤퍼짓 단자에 연결된다.


    ③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와 함께 설치된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이 프로그램은 그래픽 카드 종류마다 다를 수 있다.


    ④ 실행시킨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에서 '비디오 입력' 버튼을 클릭한다.


    ⑤ 비디오 입력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원하는 비디오 입력을 선택한다. 여기에서는 '콤퍼짓'을 선택한다.


    ⑥ 입력된 영상을 동영상으로 저장하자. 저장 옵션에 따라 AVI나 MPG 파일로 저장할 수 있다.


    ⑦ 저장된 동영상은 프리미어 같은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동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



    Handy Tip VIVO 기능을 알아보자


    ▲ VIVO 기능을 지원하는 비디오 입출력 칩


    VIVO는 외부 영상을 입력해 각종 멀티미디어 파일을 만들 수 있는 기능으로 그래픽 카드에 별도로 내장된 비디오 입출력 칩을 사용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고가의 그래픽 카드에만 장착됐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래픽 카드의 전반적인 가격 하락과 더불어 비디오 입출력 칩의 가격도 저렴해졌다. 30만원을 호가하던 VIVO 기능의 그래픽 카드가 지금은 1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것.
    다만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활한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양이 높은 PC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Step 4 그래픽 카드 미다스의 손을 빌리다

    멀티 디스플레이는 이제까지 모니터 한 대에서 답답한 작업을 하던 PC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맨 처음 멀티 디스플레이를 PC에 접목시킨 회사는 매트록스이며, 이후 ATi나 nVIDIA 같은 경쟁사에서도 멀티 디스플레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멀티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2대 이상의 모니터나 TV가 필요하고 소프트웨어적인 설정도 몇 가지 필요하다. 그러나 각 제조사별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는 이름만 다를 뿐 멀티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기 위한 기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번 파트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ATi와 nVIDIA 그래픽 카드의 멀티 디스플레이 구성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Ati 히드라 비전
    ATi의 멀티 디스플레이 프로그램 히드라비전(Hydra Vision)은 DVI 단자와 TV 출력을 지원하는 ATi 계열 그래픽 카드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윈도 트레이에 등록된 ATi 작업 관리자에서 설정이 가능하다.

    ① 윈도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의 설정에서 등록된 모니터를 클릭해 위치를 바꿔보자. 바뀐 방향에 따라 가로로 화면을 늘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윈도 화면을 위아래로 구성할 수도 있다. 자신이 편한 화면으로 설정하자.


    ② 히드라비전은 멀티 데스크를 지원한다. 멀티 데스크는 실행 중인 작업 창을 가상 화면으로 옮겨준다. 즉, 실행 중인 프로그램들을 모두 가상 화면으로 이동해 자신이 작업하는 화면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멀티 데스크는 ATi 설정 프로그램에서 설정할 수 있다.


    ③ 멀티 데스크는 최대 9개까지 지원되며, 단축키를 사용하면 원하는 가상 화면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다. 단축키를 설정해서 다양한 작업을 빠르게 진행해 보자.


    ④ '옵션' 항목에 들어가려면 트레이에 등록되어 있는 'ATi 작업 관리자'를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클릭하고 히드라비전의 '바탕 화면 관리'를 누른다


    ⑤ '바탕 화면 관리자' 탭에서는 화면을 늘리거나 구성 프로그램에 대한 옵션을 설정할 수 있다.


    ⑥ '핫키' 탭에서는 히드라비전의 다양한 기능들을 단축키로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설정해 보자.

    nVIDIA 엔뷰
    nVIDIA는 엔뷰(nView)라 불리는 멀티 디스플레이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ATi와 마찬가지로 DVI 단자와 TV 출력을 지원하는 그래픽 카드에서 동작한다.

    ①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엔뷰 설치 마법사'가 나온다. '다음'을 클릭해서 자신이 원하는 멀티 디스플레이 환경을 설정하자. ATi처럼 바탕 화면을 늘리거나 가상 화면을 만드는 설정을 할 수 있다.


    ② 마법사로 엔뷰를 설정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바탕 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르고 '엔뷰 설정'을 클릭한다.


    ③ '창' 탭을 클릭하면 마법사에서 설정했던 멀티 디스플레이나 가상 화면 등의 설정을 조절할 수 있다.


    ④ '효과' 탭에서는 윈도 작업 창을 투명하게 하거나 3D 효과를 설정할 수 있다.


    ⑤ '단축키' 탭에서는 엔뷰의 여러 가지 기능들을 단축키로 설정할 수 있다. 보다 빠른 작업을 원한다면 자주 사용하는 단축키를 설정해 두자.


    ⑥ ATi의 히드라비전이 모니터 화면을 클릭하고 움직여서 바탕 화면을 여러 방향으로 늘렸다면, nVIDIA의 엔뷰는 수직 스팬과 수평 스팬을 이용해서 상하좌우로만 화면을 늘릴 수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화면을 설정하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by 인생타짜 | 2007/03/08 00:41 | 트랙백(72) | 덧글(0)
    메가비전테크놀로지, 200인치 멀티프로젝션 디스플레이 선보여
    메가비전테크놀로지, 200인치 멀티프로젝션 디스플레이 선보여
    [ 마학준 2006-11-27 ]

    SEOUL, Korea (AVING) -- <Visual News> 메가비전테크놀로지(대표 이시형 www.megavision21.com)는 '2006 FTTHㆍu-시티 산업전시회'에서 초고해상도, 초대형 화면, 곡면 스크린 등을 지원하는 멀티프로젝션(Multi-projection)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멀티프로젝션 디스플레이는 클러스터 기술을 적용해 해상도가 수천만 픽셀이 이르며, 화면 사이즈를 무제한 확장할 수 있고 곡면 스크린 까지 지원한다. 핵심 기술은 영상 클러스터 기술과 화면 일체화 기술인 타일드 디스플레이(Tiled Display) 기술이다.

    메가비전테크놀로지는 "원형 및 곡면 스크린 등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 주문제작이 가능하며, 가격은 동일 사이즈의 PDP/LCD TV와 비교할 때 1/2 수준"이라고 했고, "신설되는 KT 유비쿼터스 체험관이나 건설사 모델 하우스에서 멀티프로젝션 디스플레이에 많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메가비전테크놀로지는 그래픽스연구원(IGI)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공동 개발한 멀티프로젝션 디스플레이의 제품생산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문의: 02) 3147-2088

     

    All Visual Internet News of Goods
    마학준 기자 (aving.net)


    by 인생타짜 | 2007/03/07 23:56 | 트랙백(73) | 덧글(0)
    오리온PDP, 무한확장형 MPDP

    [히트상품]오리온PDP, 무한확장형 MPDP

    [머니투데이 2006-05-31 19:22]    

    [머니투데이 MT비즈팀 ]국내 최초의 브라운관 제조업체였던 오리온전기에서 지난 2002년 말 분사한 PDP 전문브랜드 (주)오리온PDP(대표 유재활, www.orionplasma.co.kr)가 세계 최초로 무한 확장이 가능한 멀티PDP(이하 MPDP)를 개발함으로써 산업용 PDP 시장에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았다.

    현재 오리온PDP의 주요 생산품목인 무한확장형 MPDP는 오리온PDP가 국내외 PDP 생산업체들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2003년 2월 세계 최초로 84″ MPDP 'NeoDigm'을 개발해 국내외 산업용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50여 명의 연구개발 인력과 100여억 원의 개발비를 투입해 개발한 제품.

    기존 84″ MPDP의 한계였던 확장성의 벽을 기술력으로 뛰어넘은 최적의 산업용 디스플레이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제품은 디스플레이를 표현하는 패널간 간격이 5mm 이하로 화면의 연속성을 크게 개선시켰으며, 멀티 큐브 방식에 비해 6분의 1의 무게와 두께로 이동성과 공간활용도가 매우 우수하다.

    뿐만 아니라 초대형 컬러 LED에 비해 해상도가 매우 높아 영상 및 정보전달력이 뛰어나고 가격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기존 제품의 대체 및 신규시장 창출에 획기적인 제품으로 공인받고 있다.

    오리온PDP는 PDP의 약점인 잔상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패널을 개발 중에 있어 이 패널을 적용한 MPDP를 올 하반기부터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산업용 대화면 디스플레이의 주요 적용 장소인 관제실 등에 주로 사용되는 DLP 큐브의 대체장비로 그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재활 대표는 “이 패널이 생산되면 지난해 총 매출액 270억원의 2배인 540억원을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현재 오리온PDP는 중국시장을 필두로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호주, 일본 등 기존 시장은 물론 동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 또한 활발히 개척하고 있다.

    MT비즈팀

    by 인생타짜 | 2007/03/07 23:49 | 트랙백(21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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